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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영어강사

희망나눔학교와 미안함

추운 겨울날이었고 낯선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았다.

그 첫날 나의 큰 실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가끔 가르쳤던 아이들과 수강생들을 돌이켜볼 때가 있다.

그중 내가 사람으로서 미흡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미안했던 H도 가끔 떠오른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때 의미 있는 봉사를 하고자

굿네이버스가 주관하고 BMW 코리아가 후원하는 희망학교에 자원봉사를 나갔다.

 

희망나눔학교

신체, 창의성, 인지, 정서 발달을 도모하는 굿네이버스 위기가정아동지원 프로그램

 

프로그램의 취지는 학기 중보다 지도와 식사의 양과 질이 부족할 위기가정 아이들을 위해

굿네이버스가 직원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팀을 관할 지역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

 

나는 두 명의 직원과 2016년 한 초등학교에 가기 전 짧은 교육을 함께 받았다.

직원은 초임 사회복지사였고 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교장선생님과 굿네이버스직원, 그리고 나와 아이들

총 15명의 아이들은 2주 반 동안 교실에서 주로 몸을 쓰는 활동들을 하고

점심도 먹고, BMW 교육용 전시관에도 방문하기도 했다.

 

검색해보니 아직까지 이 프로그램은 진행 중이라 하니 교육봉사에 관심 있는 대학생분들은 알아보셔도 좋을 것 같다.

www.goodneighbors.kr/

 

굿네이버스 | 세상을 위한 좋은 변화, 굿네이버스

대한민국 대표 토종 글로벌 NGO 국내단체 굿네이버스. 소중한 후원금을 아동과 지역사회를 위하여 투명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www.goodneighbors.kr

봉사 첫날 교실에 먼저 도착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3학년 이상의 아이들은 혼자서 등교를 했고, 1,2학년생들은 주로 조부모님과 함께 등교했다.

이 와중에 본인이 키우던 진돗개와 함께 등교한 남학생 Y의 입장이 요란했다.

프로그램 진행 중 내내 반 분위기를 잡던 '큰 형'과 같은 Y는 멋쩍게도 다시 집에 돌아갔다 반려견을 두고 와야 했다.

 

굿네이버스 직원(사회복지사) 한 분은 굉장히 긴장을 하신 탓에

아이들이 봐도 상기된 얼굴과 몸짓으로 아이들을 맞았다.

나도 타인이 봤으면 '저 사람 긴장하지 않은 척하느라 더 긴장하는군.'이라 생각했으려나.

 

문제의 상황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누가 성별을 일 분 일 초 간격으로 물어봐 신물이 난다는 듯

패딩, 모자, 신발, 장갑 모두 분홍색 계열을 입은 H를 반갑게 맞을 때 일어났다.

 

자리에 앉혀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걸게 하기 위해 외투를 벗는 때였다.

외투는 벗었지만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던 H에게 다가가

"H, 왜 장갑은 안 벗어~? 예쁜 손 보여줘!"라고 하니 부끄럽게 손을 감췄다.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돌아와 보니 H의 열 손가락은 첫 번째 마디나 두 번째 마디들이 모두 없었다.

손톱이 없는 짧고 작은 양 손을 보고 멈칫했다.

'실수했다.'

 

사과해야겠지. 어떻게 사과하지? 아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괜찮아? 어떻게 하지.

 

변명으로 프로그램 첫날은 정신없이 분주했고 나는 어느새 버스에 올라탄 뒤였다.

어렸다.

왜 학교나 단체 측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장애 정보를 미리 공지해주지 않았지?

복지사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자원봉사자라 정보 공유의 대상이 아닌가?

비난의 구름만 폈다. 생각이 어렸다.

 

저녁에 퇴근한 엄마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내일 가서 이야기하면 된다며 당연하지만 현명한 조언을 해주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 체면을 세우지 않고 변명 없이 아이에게 사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모두가 점심을 먹고 친해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한가로운 오후에 H를 청소도구함 쪽으로 살짝 불러 이야기했다.

'어제 선생님이, H에게 실수를 했어.'

아이의 눈에는 혼나는 건가? 하는 눈빛과 본인이 아닌 선생이 실수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하는 눈빛이 섞였다.

'선생님이 H의 손가락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고 하며 오자마자 장갑을 벗게 해서 미안해.

연필을 잡기 위해 장갑을 벗게 하려고 했던 거야.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아이는 허무할 만큼 밝게 이야기했다.

'아? 괜찮아요. 할머니가 그랬는데 엄마가 저 뱃속에 있을 때 오리고기를 잘 못 먹어서 그런 거래요. 저 가서 M이랑 딱지치기해도 돼요?'


아직까지도 그 장갑과 청소도구함 앞에서 친구 M에게 달려가며 '야, 같이해!'라고 소리치는 H가 생각난다.

 

후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나 성인 수강생분들을 접할 때,

어떻게든 무지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두 번 생각하게 해주는 H에게 아직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