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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그래서 영어를 잘 하시는구나~"

Spoiler alert. "동해물과" 하면 "백두산이" 자동 재생이 되는 것처럼 그 뒤를 잇는 말은 "어쩐지" 혹은 "부럽다."

처음 만난 사람이나 지인으로 알고 지내다 우연치않게 서로의 연애/결혼 여부에 대해 대화하게 될 때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바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쿵짝쿵짝 대화가 왔다 갔다하고

이제는 내가 맞장구나 반응으로는 대화의 공을 상대편 코트에 보낼 수 없을 때야 국제 결혼했음을 말하게 된다.

"어느 나라 분이세요?"

"미국인이요."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미 스포일러를 한 1. '어쩐지' - 50%

 

"아! 어쩐지 영어를 잘 하시더라!"

"아! 그래서 영어를 잘 하시는구나!"

이 반응은 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영어를 가르치는 일임을 아는 상대방이거나,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해주신다.

아무 의도가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불편해하는 반응이다.

칭찬과도 같은 어쩐지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다보면 좁은 속에서 꾸물꾸물 생각이 피어오른다.

"음... 사실은요. 제가요, 엄청 노력했거든요. 이만큼 하려고 그 젊을 때 이런 이런 고생을..." 물론 내 머릿속에서 나한테만 하는 혼잣말이다.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이런 반응에 불편해한다. 칭찬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물으신다면, 제 블로그명이 그래요.

 

 

2. '신기해요', '우와', '어때요?' - 30%

 

1번 '어쩐지'의 앞이나 뒤에 세트처럼 따라오는 2번은 신기함과 궁금함이다.

굉장히 멋쩍다.

방금 내가 짧지만 강렬한 동전 마술을 보여드린 것과 같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 마술과 같다니 헤헷-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언어에 대한 Q&A 시간이 따라온다.

"어떤 언어로 대화하세요?"

"말이 안통해서 답답할 때 있지 않아요? 싸울때나..."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고 답하면 마치 YES/NO에 따라 답해야 할 질문이 달라지는 게임처럼 '1번으로 돌아가세요.'

오히려 가끔 대화가 멈출 때는 한 번도 쓰지 않는 단어(곤충/동물/식물 이름, 질병명, 정치적 용어 등)를 사용할 때 뿐이다.

간혹가다 국적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시기도 한다. 그럼 미국 시민권자인지, 아들은 군대를 가야하는 건지.

시민권 절차를 밟지도 않았고 관심이 없기에 아니오.

아들은 낳아본적이 없고 병역의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드님께서 선택하셔야 하여 잘 모릅니다.

 

 

 

 

3. '흑인이에요? 백인이에요?' - 10%

 

에엥~? 진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실제로 정말 많이 듣고, 주로 40, 50대 분들이 물어보신다.

심지어 대학 교수님들이 개인적으로 물어봐서 당황하기도 했다. (물론 교수도 사람이고 교수라고 더 알거나 덜 무례한 건 아니다.)

백인이면 어떻고 흑인이면 어떨까.

 

멕시코계 미국인이에요. 

앗. 잘 모르는 '미국인'이다 싶은지 "아~" 라는 이해의 감탄사를 소리내어 말하지만 사실 얼굴에는 물음표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의 아빠를 가진 재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인 김애란 작가의 <가리는 손>이 떠오른다.

재이의 엄마가 결혼할 때나 결혼을 하고 나서 '뭐가 아쉬워서'라는 주변 반응에 익숙해지다 못해 시큰둥해하는 반응을 읽은 것이 지금까지 생각이 난다.

 

 

 

4. '아이 낳으면 예쁘겠다. 혼혈아들 예쁘잖아~' -10%

 

글쎄요. 내 새낀데 당연히 예쁘지 않을까요.

결혼한지 1년이 넘어가니 주변에서 2세에 관한 질문을 더 듣고 있다.

내 아이의 '다른 미모'에 대한 기대감도 들린다.

기대의 기준치에 맞추어야 할 텐데, 엄마가 예쁘지 않아서요...

 

정~말 악의없는 반응인 것을 나도 안다.

내가 국제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어쩌면 나도 했을 말이거나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미 과거에 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때 보시고 아무말도 말아주셨으면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5. '그렇구나.' - 0 %

내가 원하는 반응이다.

대화의 상대가 결혼했다고 할 때, 그러시구나하는 반응에서 끝나기를. 혹은 축하드려요.

 

정샘물씨가 두 아이를 공개입양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항상 대단한 일 하셨다라는 애국자에게 하는 말이나,

힘든일을 굳이 하는 안타까운 시선이었다고 한 프로그램에서 말씀하셨다.

라디오스타 클립 캡처 ⓒMBCentertainment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 된 짧은 영상을 보면서 나도 아차하고 깨달았다.

그러게. 나도 주변에서 입양하신다고, 혹은 하셨다고 말하면 축하한다고 말해야겠다 하고.

 

나의 이 글도 같은 맥락인것 같다.

그렇구나. 혹은 축하해요. 라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또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겠지.

'남편 외국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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