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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영어강사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한국인이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야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건 장래희망란에 적어 내는 것처럼 쉬운 줄 알았다.

중학생이었을 땐 해당 과목만 공부를 잘하면 그 과목 교사가 되는 줄 알았다. 무지했다.

고등학생 정도야 되어서 교육대학교가 따로 있고, 잘은 모르겠지만 시험을 보고 선생이 된다는 걸 안 것 같다.

 

대학 졸업반일 때 나는 어떤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해야 취직 잘했다고 소문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통역도 좀 해봤고, 리아종도 해보고, 단순 사무일, 서비스직까지 경험했었다.

그 중 마음에 든 건 영어 (보조) 강사.

대학생 시절, 영어마을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1년간 근무했고, 방학 때는 봉사 형식으로 초등학교에 가서 영어를 가르쳤고,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인 초등학교 방과 후 영어교사도 해보았다.

 

그런데 영어만 잘한다고 교사, 혹은 '잘 나가는' 강사가 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나는 메리트가 없었다.

유학 경험이라면 호주에서 1년간 열심히 일한 것과 배낭 하나 매고 맥주 마시며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은 경력이 될 수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영어 강사가 될 수는 있지만 '모셔가는, 일타' 강사는 될 수 없었다는 게 그때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돈 잘 주는 기업에 취업해서 일을 다니다가 영어 교육을 하고 싶은 욕망이 꼬물꼬물 올라와서

약 육 개월의 TESOL 과정을 일과 함께 하며 수료하며 TESOL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그리고 들어가게 된 교육대학원.

올 8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쓰고 싶은 (부정적인) 포스팅이 많지만 조금 미루어 두기로 한다.

 

영어교육 석사와 임용고시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준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진 한국에서 대학 나온 한국인은 어떻게 영어 교강사가 되나?

쉽다. 임용고시를 보면 정교사가 되는 거고, 학교마다 다르지만 임용을 보거나 보지 않고 기간제 교사가 되는 것.

 

강사는 일단 종류부터가 너무 많다. 유치부 학원 강사, 초중등부 학원 강사, 고등부 학원 강사, 과외 선생, 성인 회화 과외 강사, 자격증 취득 및 인터뷰 전문 강사, 해외 유학 및 이민 컨설턴트 겸 강사, 기업체 출강 강사, 학습지 강사 등등..

 

코로나 시국에 웃프게도 사교육 영어는 시들지 않는 불꽃처럼 동네 여기저기서 퍼지고 있다.

비대면 수업을 하지만 시스템만 갖추어져 있는 학원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집에서도 화상과외를 하기 쉽다.

현재 일주일에 세 번 학원에 나가 수업하고, 세 명의 고3, 한 명의 고2 학생의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대학원 수업은 이번에도 온라인으로 수강할 예정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유학 경험 없고 전문적인 교육 학위 없는 한국인인 내가 영어 강사로 일하는 게 어떻냐?

음,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재밌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고용 구조도 아니지만 겁나 즐겁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수강생들이 빠르게 학습 효과가 눈에 보이고 귀로 듣는 것과

신장이 1m를 조금 넘는 아이들이 두 팔을 활짝 펼쳐 위아래로 모으며 'alligator'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는 것,

한글로 읽어도 이해가 어려운 수능특강 지문을 보고 수험생과 함께 씨름하는 것이 즐겁다.

 

나 혼자만 미소 지을 수 있는 경험이겠지만 짧게 스쳤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수강생들과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적을 생각에 또 즐거워진다.

같은 (물)경력을 가진 강사들, 알찬 경력과 경험을 가진 강사들 모두 즐겁게 수업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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